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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이단

[이단] '한학자'는 누구인가 |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통일교) 내의 권력다툼과 '참어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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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를 밝히고 있는 해당 게시글에 대해 무분별하게 '명예훼손 게시물(댓글) 삭제 요청'을 하는 경우, 2002.1.22.대법원 선고 '2000다 37524' 판결에 근거한 공공의 이익을 위한 사이비·이단 정보 공개에 대해 정당하다고 판시한 선고에 위배되는 행위이며, 고발 조치하겠습니다.

 

현 통일교 수장으로 활동 중인 한학자. 문선명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당시 얼굴은 익숙하지만 인상 깊은 인물은 아니었다. 아내로서 문선명의 옆자리를 지키는 사람. 그와 함께 붙여진 “참어머님”, “참부모님” 등의 호칭 외에는 별다른 비중이 없었다. 그랬던 그녀가 현재는 세계통일을 주창하는 단체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문선명의 아내

▲유년시절의 한학자 (유튜브 채널 <천일국 국민교육>)

 

1943년 2월 10일(음력 1월 6일) 평안남도 안주에 태어난 한학자. 6·25전쟁 등으로 어머니 홍순애와 함께 피난 생활을 겪었다. 실향민으로 대구, 부산, 제주 등 떠돌이 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1955년 11월 지인의 소개로 문선명이 이끄는 통일교회를 알게 되었다. 한학자는 그 이듬해 1956년 봄 14살의 나이에 문선명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문선명의 지도를 받던 한학자는 17세의 나이에 문선명의 아내로 간택된다. 그렇게 1960년 3월 27일(음력 3월 1일) 청파동 전 본부교회에서 가약식을 맺었고, 같은 해 4월 11일(음력 3월 16일) 성혼식을 올렸다.

 

통일교 측은 이 둘의 결혼으로, 실패한 예수님의 구속사역이 다시 실현될 수 있는 출발점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한학자는 문선명의 아내로서 절대적인 위치는 아니지만 존경받는 인물로 자리 잡았다. 각종 행사에 늘 동행했고, 참어머님이라는 호칭을 받으며 경배 대상에 올랐다.

야망인가 욕망인가 야욕인가

▲1960년 3월 27일(음력 3월 1일) 문선명과 가약식을 맺은 한학자 (유튜브 채널 <천일국 국민교육>)

 

터무니없는 교리이지만 문선명은 통일교 내 메시아로 불리며 군림해왔다. 말 그대로 눈에 보이는 신이었다. 그런 문씨도 한낱 인간에 불과했다. 결국 문선명은 2012년 9월 3일 향년 92세 지병으로 사망한다. 신도들은 충격에 휩싸였고, 통일교 측에서는 하늘로 떠났다는 의미인 “성화”를 운운하며 수습하기에 정신없었다. 반면 문선명은 본인의 사망을 예상했고, 7남 문형진을 후계자로 세우며 죽음을 준비했다. 모두가 문형진이 교권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하던 그때 한학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2015년 문형진의 직책 대부분을 박탈시켰고, 이후 고위 간부들과 학자들을 동원해 한학자 신격화 교리를 만들어갔다. 그렇게 한학자는 수장으로 올라섰다.

천륜도 끊어낸 권력욕

▲경기도 가평 통일교 성지 안에 조성된 한학자(중앙 전면)와 문선명(왼쪽 후면)의 동상

 

한학자가 수장이 되면서, 아들 문형진은 미국으로 도피했다. 그곳에서 생츄어리교회를 운영하며 계속해서 한학자를 견제했다. 문형진은 설교 때 한학자가 “완전히 사탄의 주관을 받고 있다”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사탄의 핏줄”, “음녀” 등의 말로 맹비난했다. 한학자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한학자 통일교 측은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참부모님을 참아버님과 참어머님으로 나누어 참어머님은 불신하고 참아버님만을 내세우는 불효막심한 패륜아”라고 맞불을 놓았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이해하자면 결국 돈 때문이다. 헌금 강요는 물론이고, 각종 사업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창출해온 통일교. 문선명의 뒤를 잇는 것은 곧 돈방석에 앉는 격이다. 한학자 역시 일찌감치 돈 냄새를 맡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문선명 사망 이후 교권을 쥔 한학자는 고가의 보석 쇼핑과 원정 도박을 실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약진하는 문현진, 골머리 앓는 한학자

▲문형진에 대해 패륜아라고 일갈한 한학자 통일교 홈페이지

 

한학자는 교권과 함께 따라올 재물을 쥐기 위해 7남 문형진 외에 3남 문현진과의 법적 공방도 이어갔다. 문형진과는 후계권을 차지하기 위한 진흙탕 싸움이었다면, 문현진과는 통일교 재산을 놓고 벌인 소송전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여의도에 세워진 ‘파크원(Parc1)’이다. 당초 통일교는 옛 여의도 통일주차장 터를 활용해 금융 중심지 조성을 기대했다. 문현진이 관련 사업을 도맡아 순탄하게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 한학자가 갑작스럽게 성지반환을 요구하며 제동을 걸었다. 그렇게 모자간의 소송전이 시작되었고, 결국 사업은 미뤄졌다. 한학자가 성지반환을 명목으로 문현진을 몰아낸 후 재산을 차지하려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법은 아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판결 이후 서울 여의도 파크원 프로젝트 사업은 다시 순항했고 결국 완성됐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파크원 (출처: UCI그룹)

 

문현진의 장인이자 통일교 이인자로 불리던 곽정환씨가 한학자 신격화 교리에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다. 곽씨는 “현재의 ‘독생녀 통일교’는 창시자(문선명) 뜻과 무관”하다며 한학자 통일교를 비판했다. 문현진이 직접적으로 나선 것은 아니지만, 한배를 타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한학자를 적극적으로 견제하는 모양새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한학자

▲문선명 초상화 앞에서 기념 사진을 촬영한 한학자

 

어찌 되었든 문형진은 문선명으로부터 후계권을 물려받았다. 한학자에게 버림받았지만 정통성을 내세우며 독자노선을 구축해 통일교를 운영하고 있다. 문형진을 따르는 신도들 역시 문선명이 세웠다는 것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문현진의 경우 파크원 사업 성공 외에 글로벌피스재단 세계의장직을 맡으며 통일운동을 펼쳐왔다. 문현진은 2017년 말까지만 해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통일교인이 아니며 한국의 통일교와도 무관하다. 종교의 틀을 벗어난 평화운동가”라고 밝혔다. 그러나 2019년 중순 장인이자 전 통일교 이인자 곽정환을 통해 통일운동이야말로 문선명의 참뜻을 계승하는 것이라 주장하며 후계자를 넘보고 있다.

 

반면 한학자는 문선명의 아내 그리고 만들어진 신격화 교리 외에는 내세울 것이 없다. 명맥을 유지하고 싶었던 고위 간부들의 술수에 올라타 얻은 대표의 자리를 지키고만 있을 뿐이다. 과연 한학자가 통일교에서 그토록 외쳐온 메시아가 될 수 있을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한학자의 미래가 밝아 보이진 않는다.

 

이러나저러나 현재 통일교의 수장은 한학자다. 정통성도 없고, 문현진과 같이 문선명의 뜻을 계승하는 차원의 행보를 걷는 것도 없다. 기원절 행사 진행과 성지조성 등을 주장할 수 있겠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결국 한학자 신격화와 재정확보를 위함이었다. 한학자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건 그래도 시간은 흐른다는 점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총재 한학자”, “대표 한학자”라는 호칭이 입에 붙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한학자 역시 지금의 위치를 마다할 일이 없다는 점이다. 계속해서 자리를 지키려는 한학자, 되찾으려는 두 아들들의 수 싸움이 관전 포인트다.

 

▶ [이단]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통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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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학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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